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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라디오드라마 임청각 2019.4.8(월)~6.14(금) 18시45분(주5일)
줄거리
  • 석주 이상룡(1858년 -1932년)선생은, 구한말 경북 안동에서 퇴계학맥을 계승한 영남의 거유, 서산 김흥락에게 사사하며 명가의 후예이자 정통 유학자로서 손색없는 학문적 수업을 닦았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은 쇠락한 조선에 침략의 촉수를 내밀고 있었지만, 선생은 3천석 재산의 종가, 임청각을 지키며 평온한 청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 1896년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공표에 항거해 외숙인 권세연이 의병을 일으키자, 선생은 이 의병에 동참해 행동하는 척사유림의 전형적인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의 이러한 현실 자각은, 1905년 을사늑약에 맞서 합천 가야산에 군사기지를 설립하는 무장투쟁계획으로 이어졌지만,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선생은 무기의 열세, 근대적 군사훈련의 부족 등으로 인한 의병의 한계를 깨닫고, 구국운동의 새로운 방략을 모색했다.
  • 선생은 이후 동산 류인식, 일송 김동삼 등의 혁신유림과 함께 근대교육기관인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서구 근대사상의 비판적 검토를 통한 계몽운동에 나섰다. 당시 선생의 나이는 50세였다. 안동의 전통사회에서 명가의 후손으로 이미 뚜렷한 입지와 명망을 얻고 있던 선생이 지천명의 나이에, 새롭게 자신의 의식세계를 전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선생은 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서구의 신사조를 흡수함으로써 전통과 근대의 결합을 통한 구국의 길을 찾아 나섰다.
  • 안동지역의 집단개화에 앞장선 선생은 1908년, 계몽단체인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설립해 애국강연, 회보발간 등을 통한 자강운동에 매진했고, 대한협회 중앙본부가 점차 친일적 성향으로 기울자 본부에 통렬한 비판을 가해 구국계몽운동의 본령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 이 무렵 당시 국내 최대의 비밀결사인 신민회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모색을 위해 해외에 독립군 기지개척을 추진하고 있었다. 주진수와 황만영을 통해 이 계획을 전해들은 선생은 가산을 정리하고, 1911년 1월 일가를 거느리고 만주 망명을 결행했다. 쉰 넷의 고령에 풍요롭고 편안한 삶의 터전을 버리고 황량한 만주 땅 망명길을 선택한 선생의 결단은 결코 범용한 것이 아니었다.
  • 만주로 망명한 선생은,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낮선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정착한 곳은 유하현 삼원보였다. 선생은 우당 이회영 선생 등과 더불어 새로운 생활의 터전이자 해외 독립운동의 구심체가 되는 독립군 기지개척을 시작했다. 우선 경학사를 조직하고 사장을 맡아 벼농사를 보급하는 등 이주기반을 마련했다. 그들은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선조들의 웅대한 기개가 서린 곳에서 천여 년이 지난 20세기 초엽에 다시금 조국광복의 꿈을 심었다.
  • 경학사를 통해 이주민의 경제적 안정과 법적 지위 보장 등에 힘쓰는 한편 신흥강습소를 세우고 군사교육을 통해 조국광복의 전위대가 될 독립군 양성에 착수했다. 경학사는 거듭된 흉작과 토착민들의 반발 등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민단(1912)과 한족회(1919)로 변신하며 한인사회의 토착화를 이루어 갔고, 신흥강습소도 신흥학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며 군사교육기관으로서 수많은 독립군을 길러냈다.
  • 국내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한족회는 군사기구인 서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선생은 군정서 독판을 맡아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나섰다. 서로군정서는 국내진공작전을 시도하는 등 눈부신 활동을 전개했다.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의 한계를 알고 있었던 선생은 무장력을 갖춘 항일조직 결집에 총력을 기울였다
  • 선생의 활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업적은 끊임없이 독립운동단체의 대동단결을 위해 노력한 점이다. 선생은 1920년 초 북경에서 조직된 군사통일촉성회에 참가해 박용만, 신숙 등과 군사기구 통합방안을 협의했으며, 1923년에는 각 지역의 독립운동단체대표 120명이 모여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한 국민대표회의에 김동삼 등 4명을 대표로 파견해, 독립운동 계열의 의견조정과 단합을 위해 힘썼다.
  • 선생은 또한 국외독립운동의 요람인 중국 동북삼성 지역의 군사 통합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22년 동북삼성의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해 통군부를 조직했고, 이를 다시 확대 개편해 17개 독립운동단체들을 규합한 통의부를 조직하는 등 독립군의 군세 확장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 선생은 독립운동단체들이 내세우던 외교론과 준비론, 실력양성론 등을 물리치고 일관되게 산업교육우선론과 독립전쟁론을 주장했다. 조국광복운동은 결국 일제 무력과의 싸움이었고 이를 위해 선생은 끊임없이 독립군 조직, 즉 무장력을 갖춘 항일조직의 결집을 주도했다.
  •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와 개조파로 분리된 이후 자체정비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결국 임시의정원은 미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안한 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하고 임시대통령에 박은식을 선임했다. 박은식 선생은 임시정부 지도체제를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에 해당하는 국무령제로 바꾸었고, 임시의정원은 만주지역 독립운동세력의 중추였던 선생을 초대 국무령에 선출했다.
  • 선생은 분열된 독립운동계에 활력과 연대감을 불어넣으려는 생각으로 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한 뒤, 항일투쟁의 최일선에 있던 동북삼성의 김좌진, 김동삼, 오동진 등을 국무위원에 임명해, 임정이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하도록 했다. 그러나 선생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열된 독립운동세력은 결국 하나로 결집되지 못했다. 상해와 만주의 독립운동방략은 서로 달랐다.
  • 선생은 임정 국무령직을 사임하고 만주로 돌아와, 1928년 5월부터 전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해 만주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 조직인 삼부 통합에 심혈을 기울였다. 선생은 국민부로의 부분적인 통합만 이룬 채 1932년 5월 12일 중국 서란소성자에서 서거했다. 선생은 청년기로부터 50여 년 동안 의병과 계몽운동, 독립군 등 가능한 모든 독립운동 방안을 실행하며, 구국의 방략을 모색했다. 선생의 유해는 광복된 지 45년만인 1990년 9월 조국으로 돌아왔다.
회차별 아이템
  • 1화. 프롤로그
    서간도로 향하는 석주 일가는 압록강의 강화된 국경수비 탓에 곤란을 겪는데....
    개목나루 석주의 대한협회 안동지회 창립 연설 상황 삽입.
  • 2화. 혼돈의 나라
    1942년 일제의 싱가폴 점령에 상심하는 이준형에서 과거로 전환...
    석주와 삼천석댁 아씨의 화려한 혼례.
    그 무렵 일본은 운요호 사태를 핑계로 개방을 요구한다.
  • 3화. 태봉전투
    명성왕후 피살에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난다
    조부 3년 상을 치르고 있던 석주는 서둘러 외숙부인 의병장 권세연을 돕는다.
    이후 의병은 일본군 병참기지인 태봉에서 일전을 치르는데...
  • 4화. 가야산 기지
    을사늑약 체결 이후 가야산에 의병기지를 만들어 독립전쟁을 준비하지만, 밀정에 의해 노출이 되고 석주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 5화. 협동학교
    의병을 통한 독립전쟁을 꿈꿨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자 계몽운동을 대안으로 계획하며 협동학교 설립을 돕는 석주. 그러나 완고한 유림과 복벽주의에만 매몰된 의병은 이들의 움직임이 마땅찮다.
  • 6화. 투옥
    계몽운동을 통한 독립으로 방향을 정한 석주는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설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완고한 유림들은 좀처럼 틈을 내어주지 않고...
    그 무렵 석주의 움직임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석주를 옥에 가두게 되는데...
  • 7화. 대한협회 안동지회
    옥중의 석주는 외교권, 사법권에 경찰권까지 접수한 일본의 빠른 움직임에 점차 계몽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무렵 안동 고을의 사람들은 경찰서로 몰려가 석주의 석방을 요구하게 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석주는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설립한다.
  • 8화. 대한협회의 변질
    일진회와 연합하려는 대한협회의 움직임에 분노하고 회의하는 석주. 간신히 모아놓은 안동의 유지들마저 외면을 하고, 그 무렵 들려 온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피격 소식.
  • 9화. 경술국치
    석주는 서간도 망명을 고심하게 되는데, 나라가 망했다. 경술국치의 충격에 빠지는 석주.
    대한협회 해체. 경술국치에 잇따르는 자정순국! (향산 이만도)
  • 10화. 가족단 구성
    석주는 신민회와 교류하며 고구려의 옛 영토에 독립군 기지 건설을 구상한다.
    친지들 만나며 서간도 이주 계획을 알리고... 김동삼, 김만식의 서간도 답사 (1910년 가을)
  • 11화. 가자 서간도로 1
    일제 앞잡이들의 석주 일가 괴롭힘. 집안 서적 뒤지기 등등 (해도교거사 참고)
  • 12화. 가자 서간도로 2
    노비 해방 – 재산정리와 순사의 의심, 위패 묻기, 텅빈 사당, 고향사람들 초청 집안 잔치
    (잔치의 명분은? 감시 눈길 피하려?)
    거국시 낭송! 출발
  • 13화. 가자 서간도로 3
    압록강 도하, 석주 출발 이후 고초 겪는 가족
    가족들도 신의주로, 석주와 상봉, 압록강 도하, 국경수비대 검문
  • 14화. 바람의 땅 서간도 1
    회인현 항도천 도착 – 김대락과 조우, 중국인들과의 갈등, 동포들의 어려움, 흉년.
  • 15화. 바람의 땅 서간도 2
    아들 준형을 본래 목적지인 삼원포로 보내지만 되돌아옴.
    막내 봉희 도착 후 유하현 삼원포로 겨우 이동했으나 중국인들의 경계.
  • 16화. 바람의 땅 서간도 3
    만주 이주 한인들 위해 여관 설치. 중국인 위화감 해소 위해 변장운동.
    “머리카락은 작은 몸이고 옷을 꾸미는 것은 바깥을 꾸미는 것
    큰 일을 하려는 자가 어찌 자잘한 것에 얽매여서야.” (꺼우리를 몰아내달라-중앙일보)
  • 17화. 경학사 조직
    유하현 삼원보 대고산 노천군중대회(1911년 봄), 경학사 조직 (밭을 갈면서 배운다)
    경학사 취지서, 삼원보 추가가에 신흥강습소(5월)
  • 18화. 꺼우리를 몰아내라
    추씨들 종회 열어 조선인을 몰아내 달라 요구. 토지 매입과 소유 불가, 개간해 놓은 땅, 고쳐 놓은 집 빼앗겨. 입적 어려움, 한인권리보장 요구, 수전 개발
  • 19화. 대흉년
    경학사 결성 첫해, 대흉년에 풍토병까지 발이 붓고... 죽어가는 자까지 속출.
    그러나 계속해서 밀려오는 한인들. 외숙 백하 김대락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준형
  • 20화. 합니하로
    합니하 이주 (1912년 봄) 습지개간, 부민단 조직, 중국 당국에 한인권리보장 요구
  • 21화. 임청각을 매매하라
    화전 일궈 사는 한인들 안타까워 대토지 구입해 함께 살자. 자금난, 사기꾼 소리 듣는 석주.
    아들 준형을 보내 임청각 매매 시도
  • 22화. 경제적 기반 마련
    수전개발, 논농사, 철공장(농기구), 금융기관 설립 등 한인 경제적 기반 마련 노력
  • 23화. 독립군을 길러라 1
    제2신흥강습소 설립, 합니하 대동중학교 연합 운동회 개최
  • 24화. 독립군을 길러라 2
    백서농장 (1914~1918)
  • 25화. 대한독립만세
    김좌진과의 만남,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3.1 만세 운동
  • 26화. 대한독립만세 2
    서간도 만세 운동, 삼원보 행진, 중국 군경의 총격, 국내까지 진격하자!
    일제 군경 앞잡이 처단
  • 27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한인 만주 이주 급증, 한족회 탄생, 군정부 설립 착수, 상해 임시정부 수립.
    서간도 대표 파견, 서로군정서 이상룡 독판.
  • 28화. 신흥무관학교 개편
    신흥무관학교 개편. 무관학교의 쟁쟁한 교관들, 찾아오는 학생들, 임시정부 안창호와의 교류.
  • 29화. 무기를 마련하라
    무기가 필요해 무기 구입 위한 특별 요원들 블라디보스토크로
  • 30화. 독립전쟁 1
    무장활동 개시(1920.5), 일제 경찰분소, 면사무소 습격, 친일파 처단
  • 31화. 독립전쟁 2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준비
  • 32화. 독립전쟁 3
    특파대 전원 피체, 계속되는 전투, 김좌진, 홍범도, 최진동 등도...
  • 33화. 중일 합동수색대
    독립군 탄압을 위해 중국 회유에 나서는 일본. 계속되는 일본의 중국 회유, 중일 합동수색대 편성,
  • 34화. 일제의 흉계 1
    서로군정서와 충돌하기도, 일제의 간도지역 불령선인 초토계획(오오바 지로), 일제 마적단 매수.
  • 35화. 일제의 흉계 2
    마적단의 일본 영사관 분관 습격 – 훈춘 사건 발생, 일제의 명분 쌓기, 대병력 서북간도 투입,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갈등), 보병에 포병, 기마병 침입, 비행대까지 출동시켜. 독립군의 사전 정보 입수 피해. 서로군정서 병영을 더 깊은 산중으로
  • 36화. 봉오동, 청산리 전투
    봉오동, 청산리전투에서 대승(1920년 10월), 독립신문 보도, 서간도의 이상룡도 기뻐했으나
  • 37화. 간도참변
    간도참변, 서로군정서 김동삼 참모장의 동생 김동만 피살, 장암동 교회 학살(북간도) 등. 화전현에 머물던 이상룡에게는 거액의 현상금.
  • 38화. 북경으로
    한인사회 재건에 박차, 흩어진 동지들을 다시 모아, 북경으로(1921) - 북경 사진관(연경 연유일지-석주유고), 군사통일회의, 임시정부 없애고 대조선공화국 세우자, 대통령은 이상룡? 이상룡은 거부, 독립군 혼란 막아야, 다시 만주로 돌아오고 마는 석주.
  • 39화. 독립군단 결성
    분열의 독립운동계, 서로군정서는 상해임시정부 이탈 독자노선 가겠다, 서로군정서 재건, 박용만 총사령관 임명 (추후 의열단에 암살 1928년), 화전현에서 손자 병화 허은과 결혼.
    대한독립단, 광한단, 서로군정서 통합, 대한통군부로.
    이후 남만한족통일회의 개최, 통의부 설립 – 총장은 김동삼, 독립군단 결성, 이상룡도 기뻐함.
  • 40화. 국민대표회의 개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민대표회의 개최, 김동삼 파견, 창조파와 개조파의 팽팽한 대결, 지지부진한 회의,
  • 41화. 분열
    통의부도 분열, 왕정복고파와 공화주의파의 대결. 전덕원파와 양기탁파. 양기탁파의 김창의 사살, 왕정복고파는 통의부 나와 대한의군부 설립. 김동삼, 이상룡에게 SOS, 화전현 회의 개최, 그러나 계속되는 분열
  • 42화. 통합의 길로 1
    자유시 참변. 전만통일회, 남만주 새로운 통합 독립운동 단체 정의부 탄생, 67세 이상룡, 직책 사양, 뒤에서 돕겠다. 만주 지역 사회 한인 생활 지원, 언론매체도 만들어, 지청천 중심 의용군 활동도 계속
  • 43화. 통합의 길로 2
    임시정부 요원의 만주 파견, 북만주 신민부와 남만주 정의부의 합동 협의. 4개항 합의, 이면합의, 임시정부 수반의 과반을 정의부 인사로 임명한다,
    이상룡 국무령 추대, 조카 광민과 함께 만주에서 임시정부로, 하얼빈 3의사 의건 (1924) - 석주유고
  • 44화. 국무령 취임
    임시정부 요인들과의 조우, 초대 국무령 취임(1925), 국무위원 임명, 그러나 정의부 내 갈등. 중앙의회 의결과 다른 중앙행정위원들의 말. 여운형 구타 사건
  • 45화. 독립운동가 사냥꾼
    다시 만주로. 계속되는 정의부 분란, 이상룡의 꾸지람, 군민대표회의 중심 중앙조직을 다시 원상태로, 조선총독부의 전략 변경, 중국과 삼시협정 맺어, 중국 군경이 한국 독립운동자를 체포해 일제에 넘긴다는 내용,
    한인가구들에 퇴거 명령 내리는 중국, 한국 독립운동자 잡아오면 포상한다는 공고,
    중국 부랑자들 전문살인집단까지 만들어. 산 자는 20원, 목을 가져오면 40원.
  • 46화. 만주 침략
    지청천, 오동진 피체, 만주에 들이닥친 일본, 산업시설까지. 여전히 석주를 찾아 와 고견을 듣는 독립운동가들, 손자 병화를 남만청년총연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일제의 만주침략 본격화, 다가오는 위기.
  • 47화. 김동삼 피체
    김동삼의 피체, 급격한 병세 악화, 동생 상동과 봉희 방문, 독립운동가의 방문
  • 48화. 석주 서거
    아들 준형에 유언, 가매장, 유해 운구 중
  • 49화. 다시 안동으로
    준형 안동으로. 준형 모친 별세, 준형 자살, 병화 고문 후유증 사망, 자손 고아원으로,
  • 50화. 에필로그
    이후 1990년 고국으로 돌아 온 유해, 96년 서울 동작 국립묘지 임시정부 요인 묘역 이장.